보리는 당근을 참 좋아했어.
노랗고, 딱딱하고, 아삭한 거.
사료는 고개를 휙,
간식은 킁킁… 흥미 없고.
근데 당근은 딱!
눈이 반짝. 귀가 쫑긋.


나는 보리를 좋아했어.
보리는 당근을 좋아했고.
나는 당근을 안 좋아했지.
그래도 매일 당근을 썰었어.
보리가 늙었을 때
당근도 씹지 못하게 되었을 때
나는 조용히 삶아 주었어.
말랑말랑, 딱 보리처럼.


그리고 그날 밤,
보리는 천천히
내 무릎 위에서 눈을 감았어.
당근 한 조각과 함께.
그 뒤로 난,
당근을 보면 보리를 떠올려.
당근을 썰면,
보리가 달려오는 것 같거든.
